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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검을 팔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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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에르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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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들어서니 비가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돌과 흙 그리고 빗방울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와 함께 축축한 돌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리스가 남긴 석탑에서 전언을 듣고 아세스에게 찾아가 열쇠를 얻기 위하여 나는 화이트채플의 거리로 들어섰다. ''무시무시한 날씨로군..'' 속으로 생각하며 걷다보니 파이프를 문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댁이 아세스가 보낸 사람인가? 언틋보기엔 비실비실하게 생겼는데 말이야." "저 혼자서 천명분의 일을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호오, 그럼 다행이군. 아세스가 나한테 어중이떠중이를 보낼리가 없으니까 말이지."


파이프를 문 남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본격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도시엔 범죄자 집단이 있네. 여러가지 지독하고 비열한 술수로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는 질나쁜 녀석들이지." "제가 그 범죄자 집단을 정리하면 된다는겁니까?" "납득이 빠르군. 그럼 바로 출발해 주게나." "알겠습니다. 금방 돌아올겁니다."


이렇게 말해두고 나는 발을 재촉헀다. 비오는 날에는 그다지 밖으로 가고싶지 않으니 말이다.


"후우... 안개에 비까지... 장난아니로군..." 머릿속의 생각이 입에 담겨져 나온건 정말 오랜만이다. 쓸데없는 잡념은 잠시 접어두고 토벌에 나서야겠다. 그러던 순간 뒤에서 살기가 느껴져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날붙이였다. 누군가 등 뒤에서 날붙이를 던진것이다 마치 암살자처럼. "취미한번 나쁘군 뒤에서 습격하다니. 뭐 범죄자 집단이니 당연한 것인가?" "난 감이 좋은사람이 싫다. 피하지 않았더라면 편하게 네녀석이 섬기는 세레스의 곁으로 갈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 높은 목소리에는 살기가 담겨져있었고 어조에는 방금의 날붙이보다도 더 날카로운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것은 모습을 드러낸 수수께끼의 인물은 너무나도 여리고 가늘었다. 움켜쥐면 부숴질것같은 손목으로 단검을 던지고 바람이 불면 날아갈것같은 작은 몸집의 여자아이였다. 검은 가면을 뒤집어 쓰고있지만, 알 수 있었다. "난 너희같은 녀석들이 싫어. 평화로운 마을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고, 편히 잠을자며 아무렇지않은 얼굴로 자기들의 평화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너희들이 싫어." 무표정으로 말하고있지만 목소리엔 떨림과 증오가 가득했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듯 입을 열었다. "너같은 여자아이가 이런데서 검을 쥐고있는건 그다지 보기 좋지않은데 말이지." "닥쳐라! 네놈이 뭘 안다고 지껄여! 나같이 더럽고 비겁한 이 거리에서 살아가본적 없으면서 뭐든지 다 안다는듯이 말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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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이 나지않을 정도로 희미해져버린 어린나이때 부모님을 암살자들 때문에 잃었다. 무엇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 이후로 마을은 점점 황폐해져 사람이 살 수 없을정도로 폐허로 변해가고 있었다. 처음엔 나도 이렇게 되고 싶진않았다. 그러나 나의 부모님을 살해한 암살자들이 이번엔 나에게 찾아왔다. 목숨의 위협이 느껴질땐 사람은 아마 나처럼 무엇이든 못할게 없을것이다. 우리집 앞에있던 양동이를 전력을 다해 암살자에게 던졌다. 당연히 우습다는듯 피했지. 난 그자리에서 기겁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고, 도망치고,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하지만 암살자는 그저 나를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따라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살고싶다는 집념 하나만으로 도망쳤다. 나는 막다른 길에서 암살자와 다시 조우하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터질것같은 목소리를 전력을다해 참았다. 살고싶어서였을까 땅에 내버려둔 단검을 주웠다. 그 암살자는 미치광이처럼 웃기 시작하였다. 나는 손의 떨림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냥 있는 힘껏 손에 쥐고있는 마지막 희망을 그 녀석에게 던졌다. 순간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들었다. 웃는 부모님의 얼굴, 따뜻한 음식, 평화로운 일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것이 주마등인가 라고 생각하고있었던 찰나에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미치광이의 웃음이 멈추었다. 소름끼치는 쇠의 소리가 돌과 부딪히는듯 했다. 누군가의 괴로워하는 신음소리와 숨소리가 들렸다. 비는 오지않았지만 바닥에는 물이 떨어지는것같은 소리가 들렸다. 피였다. 그 녀석의 피가 솟구쳐 뿌려지는것이었다. 미치광이는 내가 단검을 던지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방심했던것이다. 처음으로 내손에 직접 피를 묻혀버린 나는 그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그 후로부턴 원하는게있다면 빼앗고 이유없이 사람들을 위협하며 살아왔다. 말그대로 강도였다. 이런 나를 받아준 녀석들과 함께하면 무서울게 없었다. 이것이 나의 존재이유이자 살아갈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여기서 끝나는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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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난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해야할 일을 하고있을뿐이지 딱히 네놈과 얘기하러 온건 아니거든." "잘도 내 동료들을 죽이면서 무슨말을 하나 했더니, 그냥 뒷돈받고 움직이는 녀석이냐?" "말조심해 꼬마아가씨, 난 내가 하고싶은일이 아니면 의뢰는 받지않아." 아마도 이 소녀는 여태껏 저런식으로 돈을 벌었던것같았다. "내가 살아온 길은 피바다다. 네놈들처럼 밝고 화창한 길이아니야. 살기위해 피에 손을담가두고 몸을 맡기면서 살아왔어. 그저 살기위해. 네녀석들이 그걸 알리가 없잖아!" 소녀의 목소리가 한번더 강해진다. 높아진다. 그리고 찢어지는듯 갈라진다. 더 이상의 증오는 느껴지지 않는다. 동시에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저 살아가기 위해 나는 장애물을 없애는거야." 말을해도 못알아듣는 타입인듯하다. 나는 이제 슬슬 일을 마치고 돌아가고싶어졌다. 여기에 있다간 나도 정신이 어떻게 될것같았다. 

그래도... 조금의 동정심이었을까. 고통없이 끝내주고 싶었다. 아니, 고통을 주고싶지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소녀에겐 아마 더 이상의 미래는 없겠지. 나는 손에 쥔 검을 치켜올렸다. 소녀가 입을 열었다. "오오, 슬슬 성격나오시네." "......"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아마도 저것은 말버릇일거라고. 그리고 나는 나아갔다. 저 소녀의, 영혼의 타락함을 없애주려고 그저 나아갔다. 비는 그쳤지만 바닥에는 물이 떨어지는것같은 소리가 들렸다. 이제 여기엔 나말고는 없다. 아니,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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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봐, 끝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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